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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 들어온 공기가 겨우 폐에 가 닿을 정도만 호흡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겨우 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로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럴 때마다 깊게 숨을 깊게 마셔보려하지만 숨이 턱 막히는 느낌만 선명해질 뿐입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기면 숨 쉬는 게 버겁습니다. 의식적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려 해봐도 폐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성인이 되고 언제부턴가 관계를 맺을때면 늘 마음을 다 주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누군가가 너무나도 명백한 호의를 보여도, 마음 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만 받아둡니다. 내민 손을 언제든 놓을 수 있을만큼, 헐겁게 잡습니다. 혹여나 내밀었던 손을 거두어 저만큼 달아나버려도 ‘그럴 줄 알았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나의 모든 인간관계가 딱 이정도의 온도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만큼 슬프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그 사람이 내민 손을 꽉 잡지 못했는지 생각하다가, 기억 속에서 몇 장면을 떠올립니다. 진심으로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믿음을 저버렸을 때. 그 때 너무 어렸던거겠죠. 어떻게 내 마음을 위로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상처만 키우다가, 커다란 딱지가 생긴거에요. 이제 무뎌졌다 생각해도 사실 딱지를 벗겨내면 연약한 살이 드러나서 아픈거에요. 그냥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까지 속이고 있었던거에요. 근데 사실은요, 저는 내내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던 거에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 주었다가, 떠나갈까봐 무서웠던 거에요. 줄곧 모른척 하던 바닥에서 마주한 마음을 적어내면서, 이런 마음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생길까? 하는 물음을 가진 것이 두세달 전의 일이네요.
좋아하는 영화 대사가 있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있다."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못합니다. 말하려는 순간 울음도 같이 터져나오고 말거든요. 이제는 너무 오래돼서 쿰쿰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울지 않습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그 장소로 돌아가지도, 그때의 좌절감을 다시 느끼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나와 내 기분을 동일시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내 가치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누군가 나를 떠나간다 해도,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저는 서른의 끝자락에 겨우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또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고, 치유받습니다. 즐거운 일을 함께 즐거워하고, 힘든 일에는 기꺼이 옆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어떤 사실도 그 사랑을 부정하거나, 없던 일으로 만들진 않습니다.
처음 읽히지 않은 글을 발행하겠다고 했을 때, 제 이야기를 남에게 잘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지요. 혼자 골머리를 싸매다가 겨우 글으로 배출하는 일은 이제 줄이려 합니다. 제 곁에는 의지할 수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읽히지 않은 글은 이번 화로 마무리합니다. 대신 블로그에서 더 가볍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끄적여볼게요.
어쩌다 보니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보내는 편지가 되었네요. 유난히도 소란스러웠고 어두운 일이 많았던 올 해였습니다. 늘 그랬듯 같은 해가 뜨는 내일이겠지만, 내일의 해가 모두의 마음에 환한 빛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해도 고생많았어요 다들.
박지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