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주말 내내 비가 온다고 했는데, 순천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 대신 눈 같은 것이 흩날리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러 가는 길이 8년 전 여름과 중첩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아침부터 조금씩 흩날리던 진눈깨비가 함박눈이 되어 펑펑 내리기 시작한 건 저녁 즈음이었다. 순천 명물인 마늘통닭을 먹고 가게를 나서는데, 가로등 위로 굵고 탐스러운 눈이 폴폴 내리고 있었다. 낮에 본 작은 눈송이들로도 너무 기뻤는데! 통닭이랑 같이 마신 맥주 때문인지, 계속 배시시 웃음이 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숙소에 가긴 아쉬워, 맥주 한 잔 더 걸치러 가는 길에 점점 더 세지는 눈발이 머리 위에 한두 송이 쌓이기 시작했다. 검은 밤거리를 새하얗게 메우는 그것들이 얼마나 반갑고 좋던지,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있는 모습을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던 할아버지가 보셨는지 우리에게 말을 건네셨다. ‘젊은 친구들 뭐가 그렇게 신이 나요?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젊었을 때가 아주 많이 생각이 나네요. (…) 순천 와줘서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 어느 젊었을 시절을 떠올리셨을까. 어떤 장면이 겹쳐 보였기에 그런 말을 건네신 걸까. 왜인지 마음이 저릿해진 건, 할아버지의 말에 돌아오지 않을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어서였을까, 잊고 있던 추억을 마주한 반가움이 묻어있어서였을까.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야기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서 뭉클해졌다. 문득 미래의 누군가가 지금의 나에게 아주 멋진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순간순간을 꽉 붙잡으라고 이야기해 주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시절이 있다. 얼굴 가득 보물을 담고서, 빛나는 게 눈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처럼 말이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순천 여행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곳에서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게 될 줄도 몰랐고, 누군가의 젊은 날을 떠올리게 만들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예측이란 것이 통하지 않는, 변수투성이인 인생이 나는 너무 즐겁다. 그리고 순간을 빛내는 건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또한 오래도록 잊지 않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