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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이자, 엄마랑 함께 다녀온 첫 해외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좋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선뜻 대답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번 여행의 별로인 점을 써본다면 11포인트로 A4용지 한 장을 꽉 채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일단 동남아 여행 간다고 반팔이랑 나시만 잔뜩 챙겨갔는데, 한국만큼 추웠던 것.(심지어 당시 얼마 전에는 눈도 왔다고..) 겨울 싫어 인간이 한국 추위를 피해 간 게 베트남 추위라뇨.. 이걸 두고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는 걸까요..(아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날씨가 좀 풀렸다던데, 여행 내내 먹구름만 잔뜩 껴서는 결국 한국에서 입고 간 경량패딩을 벗지도 못하고 단벌 신사로 다니게 됩니다.(심지어 더울까봐 한국에서부터 조금 춥게 입고 가서 덜덜 떨면서 다녔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저의 첫 패키지여행이기도 했는데, 다시는 패키지로 안 가겠다고 속으로 천 번은 다짐할 정도로 최악의 일정과 가이드를 만난 것도 밑줄 쳐서 적어두겠습니다. 아-! 선택 관광과 강제 쇼핑으로 점철된 나의 4년 만의 해외여행이라니! 모든 경험은 그만의 가치가 있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망했다는 표현은 지양하려 하고, 굳이 말하자면 ‘투자 대비 로우 리턴인 여행이었다.’ 정도로 포장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최악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 가기 전날 설레하는 엄마의 모습, 배 터지게 먹었던 망고, 초록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베트남의 거리, 신비롭고 웅장했던 하롱베이 투어는 훗날 기억을 미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재료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벌써 기억이 조금 미화되기 시작했는데요.(기억력 상당히 안 좋은 편.) 우선 베트남은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면 눈 돌아가는 곳입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온실 같았던 그곳은 거리의 조경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가정집의 테라스마다 식물이 주렁주렁 자라고 있어서 마치 식물들에게 점령당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년 전 고대 식물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해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상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덕분에 사진첩엔 식물 사진이 수백 장이네요. 패키지 일정을 함께 했던 분들 중 단체로 오신 분들이 알고 보니 종갓집의 열두 며느리라는 것을 엄마에게 전해 듣고는 매우 흥미로워했던 일도 떠오릅니다. 그분들은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고 대부분 호쾌한 성격이셔서, 버스에서 호탕하게 웃으시는 웃음소리에 웃음이 터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분들은 나중에 우리를 ‘엄마 딸’팀이라고 부르며 챙겨주셨는데, 여행 내내 딸이랑 같이 여행해서 좋겠다고 한 분씩 돌아가며 말씀해 주셔서 어깨가 조금 올라갔습니다.
여행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낯선 장소에 갔을 때, 평소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것이겠지요. 엄마가 호기심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고, 케이블카 가장 앞에서 전망을 보겠다고 잰걸음으로 달려가 저만치 멀어지는 땅을 보며 신나하는 모습이 귀여웠고, 롤러코스터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고 스릴 있었던 루지를 타고 가장 무서운 구간에서 사진에 찍힌 엄마의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지! 엄마가 엄마이기 전에 호기심 많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아차린 저는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긴 자신도 아직 잘 모르는데, 타인을 알면 얼마나 다 알 수 있을까요. 아무튼 인생은 나를 알아가고, 너를 알아가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볼 것. 다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다양한 것들을 함께 해 볼 것. 물론 나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번 달도 읽히지 않은 글을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박지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