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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다면 처음으로 직접 돌보았던 식물은 초등학교 때 키웠던 행운목일 겁니다. 그것은 참 신기한 식물입니다. 댕강 잘라 놓은 통나무같이 생겨서는 그 상태로 뿌리도 없이 잘도 자랍니다. 집으로 데려와 작은 컵 받침 같은 것에 물을 담고, 밑동이 1-2cm가량 잠기도록 담가두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고는 들뜬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하고, 며칠 간격으로 물을 갈아주기도 하며 정성스럽게 키웠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때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느 날에, 볕이 너무 좋아 잠깐 창문 밖에 내다 놓고는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행운목을 집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 되고나서 였습니다. 급하게 거실로 가져와 상태를 살펴보았는데, 만져보지 않아도 얼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돌본 첫 식물이 한순간의 실수로 죽어버린 것입니다. 바보 같은 자신을 탓해봐도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의 상실감이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참 많이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베란다에 쭈구려 앉아 식물들에게 말을 건네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나, 대학생 때 씨앗을 심어 싹을 틔웠던 바질이 종강을 맞아 본가에 다녀오는 동안 방치되어 죽어버렸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 바질은 비록 먹으려고 심긴 했지만 ‘바질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아침마다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며 애정을 가지고 키웠던 아이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자취를 하게 되면서 방을 꾸미기 위해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화훼 단지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떡갈 고무나무와 셀렘을 구입했습니다. 고무나무는 1년 정도 후에 병들어 죽었고, 셀렘은 너무 많이 자라서 화분 세 개에 나눠 심었습니다. 두 개는 지인에게 선물하고, 가장 작은 한 아이가 또 무성하게 자라 두 개의 화분에 옮겨 심어 아직까지 잘 키우고 있습니다.
그 뒤로 더 많은 식물을 데리고 왔습니다. 종종 주말에 화훼 단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거기에는 너무 커버려서 누군가 데려가기는 글러 보이는 거대 식물이나, 동글동글 앙증맞은 다육이들, 붓으로 그린 것 같은 무늬를 가진 식물 같은 것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전부 초록색의 풀들인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부 다르게 생긴 잎을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제각각의 유려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식물의 잎에 매료되어, 한참을 구경하다가 고심해서 선택한 화분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잘 키우지 못한 탓에 시들해지다 죽어버리는 일도 왕왕 생겼습니다. 왜 시드는지, 물은 얼마나 자주 줘야 하고 햇빛은 얼마나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찾아보며, 다음 식물을 선택할 때는 우리 집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러다 새 잎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줄만 알았던 그것이, 어느 순간 자그마한 잎을 쏙 내놓는 겁니다. 새로 나온 잎은 어린 연둣빛을 띄고 매우 반짝여서 근처에 있으면 꼭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그건 굉장히 빨리 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좀처럼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밤을 새우고 나면 어제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술래가 된 것처럼, 그것이 바쁘게 움직일 때는 못 보고 항상 정지된 순간만 보게 되는 기분입니다. 말려있던 잎을 완전히 펼쳐 제법 자란 모습을 보게 된 아침에는 ‘안녕? 언제 이렇게 자랐니? 어휴 기특해.’라며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온 힘을 다해 피워낸 그것에게 도저히 인사를 하지 않고는, 나의 경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걸요. 결국 저도 식물에게 말을 거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이상한 세계에 빠져버린 나는, 누가 이상하다고 해도 상관없게 되어버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