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근처에 매주 라이브 공연을 하는 재즈 바가 있습니다. 빈티지한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어둑한 내부에, 빛바랜 창문 밖으로 광안 대교 야경이 보이는 곳입니다.
보통 공연은 8시 즈음 시작합니다. 7시 40분쯤 가게 앞에 도착하면, 활짝 열린 2층 창문으로 쿵쿵 드럼 치는 소리, 피아노 소리가 거리의 소음과 섞여 들려옵니다. 건물 앞 입간판에는 오늘 공연하는 밴드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조명 하나가 꺼질 듯이 켜져 있는 오래된 계단을 올라, 누군가의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복도를 지나면 가게 문이 나옵니다. 유리로 된 문 안쪽으로 언뜻 보아도 그리 크지 않은 내부가 보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카운터가 있는데,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입장료는 무척 저렴합니다. 안에는 2인석 또는 3,4인석으로 구성된 예닐곱 개의 좌석이 있습니다. 가게 안은 일부러 최소한의 조명만 켜 놓은 것인지, 조명이 그것뿐이라 그런지 어둡습니다. 몇몇 좌석은 이미 와인이나 칵테일로 발갛게 상기된 얼굴의 사람들이 떠들고 있고, 무대에는 미리 온 연주자들이 합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잔 부딪히는 소리, 악기 조율하는 소리, 웃음소리, 말소리.. 소리들이 섞여 어떤 재즈 힙합의 인트로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좌석은 무대 쪽과 벽 쪽, 복도 쪽과 가장 뒤에 있는 창문가 좌석이 있습니다.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바 자리도 눈에 띕니다. 가장 앞에 있는 낮은 4인석 테이블은 잘 하면 연주자의 코털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무대와 가깝습니다. 거의 무대 위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내향인에게는 연주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열심히 눈을 굴려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른편에는 연주자들이 공연 전이나 휴식 시간에 앉는 좌석이 있습니다. 자리가 만석일 때는 이 자리에 연주자들과 합석을 하기도 합니다. 복도 쪽에는 세 개의 테이블이 있는데, 중간에 있는 테이블은 썩 추천하지 않습니다. 앞 테이블이 높아서 사람이 꽉 차면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원수에 따라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합니다. 가장 만만한 하이볼을 시키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공연 시간이 되어 연주자들이 무대에 자리를 잡고 조명이 한층 어두워지면 가게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집니다. 연주자 중 누군가가 합을 맞추기 위해 나지막이 ‘하나, 둘, 셋, 넷’ 소리를 내는 찰나의 순간에, 가게 안은 긴장과 집중의 공기로 가득 찹니다. 찰나의 적막을 깨고 연주가 시작됩니다.
지난달 말에 있을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평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가게에 들어서 입장료를 내고, 자리를 안내받습니다. 이미 좌석이 거의 차 있었기 때문에 합석을 했습니다. 가게 안은 평소와 다를 것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붕 뜬 분위기였습니다. 주문한 하이볼을 홀짝이며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립니다. 공연 시간이 되자, 무대를 비추는 조명을 제외한 가게 안의 조명이 모두 꺼집니다. 이 공간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연주를 앞두고,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한 가게 사장님이 합류하여 끝내주게 황홀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사장님의 소감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마무리된 날이었습니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러니까 세월이라고 부를 정도의 기간 동안 어떤 일을 계속해서 해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동안 고작 열 번 남짓의 공연을 보러 갔지만, 처음 재즈라는 세계를 알게 해 준 곳이기에 아쉬운 감정이 듭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자주 보러 갈걸’ 따위의 후회를 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주말이면 2층 창문 너머로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가, 어두운 실내의 뒤 쪽으로 보이는 야경이, 반할 정도로 멋있었던 연주자들의 솔로가 이따금 생각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