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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목표 중 하나가 백패킹을 도전하는 것이라고 알려드린 적이 있지요. 호기롭게 텐트와 침낭, 에어매트 따위를 구매했지만 막상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장비들을 집에 고이 모셔 놓고만 있었습니다. 텐트를 치는 것을 피칭이라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백패킹을 시작하기 전에 첫 피칭을 해보기로 합니다. 그래도 텐트를 어떻게 치는지는 알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마침 근로자의 날에 시험 삼아 캠크닉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가기는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를 꼬셨습니다. ‘혼자’와 ‘처음’은 붙여 놓으면 꽤나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혼자 처음으로 텐트를 치며 쩔쩔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나고 부끄러운데, 함께 처음으로 텐트를 치며 쩔쩔매는 것은 재밌는 해프닝이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왜 혼자보단 둘이 덜 창피할까요? 사실 처음에는 무언가에 서툰 것이 당연한 일인데,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부끄러운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남들이 봤을 땐 누가 봐도 처음인 것 처럼 보일 텐데 말입니다. 전에는 그냥 걷다가, 가로수 나뭇가지가 길 위로 길게 늘어져서 거의 머리에 닿을 듯 내려와있는 걸 보고는, 슈퍼마리오가 점프해서 벽돌 깨듯이 머리로 나뭇가지를 맞히고 지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멀쩡한 성인이 혼자 길 가다가 그러는 건 너무 이상한 짓일 것 같아 꾹 참았지만, 재채기를 제 때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같은 행동을 아이가 한다면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지요. 왜 어른은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될까요? 문득 어른이란 재미없고 지루한 일이나 처리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며칠 뒤에 직장 동료들과 그 길을 지나게 되어 결국 하고야 말았지만, 그때의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틀 전에 캠핑장을 예약해 놓고 5월의 첫날이 되자마자 캠핑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캠핑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일반 캠핑 사이트에는 먼저 온 다른 텐트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냄새가 났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텐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쳐본 것이 4년 전일 겁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라 기억이 날 리가 없습니다만 그때도 처음 치곤 잘 쳤던 것 같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만만했습니다. 설명서가 따로 없어 대충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일단 해보면 알겠지라는 마음으로 텐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봐도 텐트 처음 쳐보는 사람 둘이서 난리 브루스를 치고 있으니 옆 텐트에서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이라서 괜찮았습니다. 폴대를 체결하자 제법 텐트 같은 모양이 나와 뭔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다며 뿌듯해하다가, 반대로 끼운 것을 깨닫고 처음부터 다시 쳐야 했다든지, 팩 망치가 없어서 쭈뼛거리며 옆 텐트에 빌리러 갔던 일도 있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어찌어찌 텐트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20분 남짓 걸린 것 같습니다.
텐트 안은 생각보다 널찍했습니다. 성인 2명이 충분히 누울 정도로 쾌적한 크기입니다. 에어매트를 깔지 않은 쪽은 아래의 파쇄석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텐트 안에 누워서 책도 보고, 낮잠도 잤습니다. 구름 때문에 아주 흐린 날이었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해가 나고 있는지 텐트 천장으로 햇빛과 나무 그림자가 일렁였습니다. 밖에는 그 사이에 몇 팀이 더 온 모양입니다. 가끔씩 들리는 말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 같은 것들이 열 발자국 정도의 거리에서 들려옵니다. 캠핑의 묘미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나 천장 위로 드리우는 나뭇잎 그림자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도시의 소음이 제거된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소리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귀로 비집고 들어오는 도시의 소음과는 다르게 귀 기울여 들어도 되고,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습니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백패킹을 다녀와야겠습니다. 배낭에 하루 동안 지내는 데 필요한 것만 챙겨 넣고, 경치 좋은 산으로 떠나야겠습니다. 배낭을 메고 사이트까지 2-30분 정도 걷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끼니는 대충 때우고 탁 트인 경치를 보며 노래를 듣거나 낮잠을 자고, 챙겨간 빵이나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미리 다운로드해둔 영화를 한 편 보다가 풀벌레 우는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겠지요. 알람은 맞춰두지 않고 마음 편하게 쿨쿨 자다가, 해가 뜨면 자연이 내는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질 겁니다. 깼지만 여전히 누운 상태로 충분히 게으름을 피우다 일어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