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003
말랑한 복숭아가 좋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줄줄. 목구멍으로 흐르는 시원한 과즙을 꿀떡꿀떡 삼키면 갈증이 싹 가신다. 수박만 한 복숭아를 한입 가득 와앙 물고는 다 씹기도 전에 한 입 더 먹고 싶다. 복숭아 알러지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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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저의 최대 관심사는 ‘잘’ 먹고, ‘잘’ 자는 것입니다.
잠을 경시하는 문화를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하며 4~5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으나, 깨어있고 행동하는 시간만큼이나 잠자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7시간 이상은 꼭 자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 테스트해 본 바로는, 저는 긴 수면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수면 시간을 하루에 7시간 반~8시간까지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최근에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는데, 몸에 잘 맞는 것 같아 꾸준히 실천하는 중입니다. 간헐적 단식이라고 하면 보통 정해진 시간 동안 단식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공복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지켜야 할 규칙이 꽤 많지만(주변에 간헐적 단식을 추천해 주면서 주의사항을 적어 보니 8가지나 되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깨끗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입니다. 가공된 식품이 아닌, 자연에서 난 식재료로 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고루 갖추어 먹어야 합니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후로 저녁에는 장 봐둔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고 있습니다. 저녁 만들면서 점심 도시락까지 챙기면 시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습니다. 양상추, 오이, 토마토 같은 채소를 많이 먹고요, 닭 안심을 푹 삶아 찢어서 샐러드에 곁들여 먹기도 하고, 통밀빵에 치즈를 얹어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습니다. 달걀도 삶거나 프라이해서 같이 먹으면 단백질을 채워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이어트한답시고 냉동실에 가득 채워뒀던 냉동 닭가슴살과 닭가슴살 볶음밥을 대충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식사 시간이 즐겁습니다. ‘끼니를 때우던’ 시간이 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를 위해 요리하고, 몸에 좋은 영양소를 충분히, 든든하게 먹어줍니다. 눈앞에 있는 음식에 온전히 집중하고, 맛을 느끼고, 씹는 감각을 느낍니다. 하루하루 식사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16시간 공복 후에 먹는 첫 끼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체감하고 있는 몇 가지 변화를 알려드리면, 일단 속이 편해지고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안 먹어서 그런지(그리고 이런 음식들은 대개 짠 편이기 때문에) 아침에 얼굴이 붓는 느낌도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 변화는 단식보다는 건강한 식단으로 바꿔서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을 하지 않았다면 식단을 이렇게 바꾸지도 않았겠지요..)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쉬고, 잘 자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조금 더 고마움을 느낍니다. 삶이 복잡하게 느껴지고 스트레스받을 때, 인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자, 생존에 필요한 행위에만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로써 앞으로 마음에 큰 풍파가 닥쳐왔을 때, 헤쳐 나가는 데 요긴하게 쓸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한 셈입니다. 아니 어쩌면, 풍파가 조금 덜 오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저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합니다. 당신도 부디 그러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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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정말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입니다.
당연히 물놀이를 할 생각으로 5월의 끝자락에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날씨 요괴답게, 일기 예보에는 비 소식이 보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5월 중순부터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창한 날의 연속이었는데, 하필 제가 제주도를 가는 날만 비가 예보된 것입니다. 절묘하게 여행 날짜 전후로 해가 쨍쨍하고, 내가 제주도에 있는 날짜에 먹구름과 비가 그려져 있는 날씨 예보를 보면서 절규했습니다. 여행 일주일 전부터 당일까지, 날씨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비구름에 번개까지 더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화가 나다가, 에이 날씨 바뀌겠지, 하다가, 제발 하루만이라도 날씨가 좋았으면, 하고 기도하다가,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며 억울해하다가, 비 와도 재밌게 놀면 되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다가, 비 오는데 어떻게 재밌게 노냐며 우울해하는 상태가 반복되었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으로 이어지는 죽음 수용 5단계에서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무한 반복되는 상태였다고나 할까요.
새삼 스스로 이렇게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다, 이렇게나 스트레스받는 게 머릿속으로 그렸던 계획이 다 무산될 것이라는 사실에서 오는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치밀하게 계획된 복수극과 같습니다. 올해 초에 다녀온 베트남 여행이 너무 실망스러워서(그때도 내내 날씨가 흐리고 매우 추웠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끝내주는 휴가를 보내겠다는 야욕에 불타올라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은 겁니다. 끝내주는 여행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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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스쿠터를 빌려. 에메랄드빛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다가, 멋진 해변이 나오면 스쿠터를 세워놓고 바다에 풍덩 빠져 수영을 실컷 하는 거야. 수영 후에는 모래사장에 잠시 누워 있다가, 그대로 스쿠터를 타고 다음 해변으로 향해. 젖은 옷과 머리가 햇빛과 바람에 말라갈 때쯤, 또 다른 해변이 나오면 거기에서 또 한참을 노는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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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물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상상만 해도 행복한, 아주 완벽한 여행 계획이었습니다만,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복수 실패를 앞두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일주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평온했을 것을. 글쎄 이렇게 무언가를 악착같이 좇으면 결국 불행해지기 마련인 것이지. 외려 내가 쫓기는 기분이 드는 것이지. 예전의 나는 어땠나 하고 또 생각에 잠깁니다. 그다지 왕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조금 우울해하다가 털어버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쉽게 잊어버립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성격은 좋지 않은 기억력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란 게 마음대로 되었던 적이 있던가 싶습니다. 하필 한파 주의가 내린 날, 지금은 없어진 단양역에 내려서 본 사방을 감싸안은 설산과 휘날리던 눈발, 동해 여행 중 길 잃은 골목에서 만난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 20대 초반에 도피성으로 떠났던 여행에서 보석 같은 인생의 가르침을 얻었던 일 모두 계획 하지 않았으며,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어느 유명한 작가의 책에 나온 구절처럼, 여행이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떠났지만,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말이 정말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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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미루다 보니, 7월에 보내는 6월 호가 되었네요. 글을 쓰며, 앞으로의 삶에서 단순함과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창문 단속, 기분 단속 잘 하시고요. 꿉꿉한 기분을 날려버릴 노래로 Pink Sweat$의 Chains를 추천드립니다.
박지현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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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사진을 몇 장 보내 드립니다. 걱정했던 만큼 내내 비가 오지는 않았고, 때때로 맑아지기도 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잔뜩 누리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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